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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1960
 
미국북장로교 선교사 H.N.Alen 의사가 입국하여 의료선교로 복음전도의 길을 열고 1885.4. 5 H.G Underwood 선교사의 입국으로 장로교 선교는 활발히 시작되었다. 1893. 1. 장로회 선교사 공의회가 조직되고 1901. 5. 15 평양 장로회 신학교 개교, 1907. 9. 17 조선예수교장로회 독노회가 조직되어 장로교 교회 확장은 잘 되었으나 1932년부터 일기 시작한 신사참배 강요로 기독교 학교가 어려움을 겪고 1938. 9.10 제27회 총회는 신사참배 하기로 가결하니 진리를 수호하는 주의 신실한 종들은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평양 장로회 신학교가 문을 닫고 주기철, 한상동, 주남선 목사 등은 검속되어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루다가 주기철목사 등 많은 분들이 순교하고 한상동, 주남선 목사, 손명복, 조수옥전도사등은 평양형무소에서, 손양원 목사는 청주 감옥에서 1945. 8. 15 해방을 맞아 출옥하였다. 이들은 한국교회 재건의 주역이 되었고, 순수한 개혁주의 보수신학교를 세우기로 하고 1946. 6. 23 진해에서 하기신학강좌를 개최하고 9. 20에 고려신학교를 개교하였다. 1948. 4. 제 34회 총회는 고려신학교 학생 추천문제를 [고려신학교는 총회와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에 노회가 천서를 줄 수 없다] 하여 문제가 제기되고 이때부터 총회 내엔 출옥성도들이 중심된 고려신학교를 거세하려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하고 장로교 분열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1948 1948.12 손양원 목사 고려신학교 총무로 취임.
 
 
1950 1950.4


1950.4.21


1950.9.28
경남노회는 출옥성도들을 거북스럽게 여기는 친일목사들의 세력이 점차 확산되고 고려신학교 천서 문제를 반대하여 오다가 경남노회는 5개가 되었다.

제36회 총회는 경남노회 총대문제로 개회벽두부터 소란이 일다가 급기야는 경찰이 동원되어 진압이 되고 총회는 유회가 되었다. 그리고 2개월 후 6. 25전쟁이 터졌다.

고려신학교 총무 손양원 목사 순교.
장례는 고려고등성경학교 오종덕 목사 집례.
고려신학교 교장 박윤선 목사가 설교하다.
 
 
1951 1951. 3. 23

1951. 5. 25


1951. 9. 8
고려신학교 설립자 중 한 분인 출옥성도 주남선 목사 별세.

제36회 총회시 고려신학교를 지지하는 경남(법통)노회 총대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경남(법통)노회는 총회와 관계 없는 것으로 선포가 되었다.

총회측에서는 한상동목사에게 그가 시무하던 부산초량교회의 명도를 요구하였고,한상동목사는 10. 14 초량교회를 떠나니 90% 이상의 교인들이 따르게 되어 초량에 있는 주영문장로 뜰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고 교회가 시작되니 삼일교회였다.
 
 
1952 1952. 4. 29







1952.9.11





1952.9.22
제37회 총회는 고려신학교와 그 관계자들(경남(법통)노회)은 총회와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총회측의 재언명과 경남(법통)노회의 엄주신 장로의 고별선언을 최후로 고려학교를 중심한 경남(법통)노회는 총회와 결별이 되었다. 이 때의 일을 김양선 목사가 쓴 [한국기독교 해방 10년사] p.159에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가 교회의 주권을 의식적으로 교권주의자에게 바친 때문에 일어난 일대 불상사들 이었다. 한국교회 70년사 상에 있어서 이때처럼 교권이 형세된 때는 없었다."

경남 진주 성남교회당에서 제1회 총노회가 조직되고 총노회 조직의 취지와 목적을 발표하였다. 취지 : 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본 장로회 정신을 떠나서 이교파적으로 흐르므로 이를 바로 잡아 참된 예수교장로회 총회를 계승하기 위하여 총노회를 조직한다. 목적 : 정통적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정신을 지지하는 전국교회를 규합하여 통합하며 개혁주의 신앙 운동을하며, 법통총회를 장차 계승키로 한다.

신사참배 한 일에 대하여 목사, 장로, 남녀 전도사의 자숙기간을 3주간 정하고 공인죄와 자인죄를 통회자복하다.
 
 
1953 1953. 3. 12 ① 미국개혁파장로회와 정통장로회와 성경장로회에 대표를 파송하다.
② 경북노회 조직
 
 
1954 1954. 3. 13 경기, 전라노회 조직하다.
 
 
1955 1955. 3. 8 송도에 고려신학교 교사신축(594평)을 시작하다.
 
 
1956 1956. 9. 20




1957. 9. 19
총노회가 총회로 개편키로 하고,회수는 총노회 회수를 계속키로 하다. 제6회 총회가 되었다. 이 때 총회 교회수 568, 목사 111명 세례교인수 15,350명, 박윤선 목사 개혁운동 10주년을 맞아 총회로 출발함에 있어서 과거 10년을 회고하면서 잘못된 것을 시정하고 새롭게 도약하는 것을 선언하다.

제7회 총회에서
① 자유중국(대만)에 선교사 파송하기로 결의하고 김영진 선교사를 선정하다.
② 새찬송가 발간하기로 하고 편집위원 선정하다.
 
 
1958 1958. 5. 13 김영진 선교사 자유중국에 파송되다.
 
 
1960 1960. 9. 20

1960. 10.

1960. 12. 13
제10회 총회에서 승동측(NA)과 합통키로 하고 합통 추진위원 9명을 선정하다.

박윤선 목사 주일성수 문제로 고려신학교 교수직 사면.

승동측과 합동하고 제45회 총회로 하다. 기념으로 고신에서 편집하여온 새찬송가를 생명의 말씀사에서발행하다.